세대를 이어 지속되는 존재의 흐름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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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세대를 이어 지속되는 존재의 흐름을 드러내다 기억을 호출하는 시각적 메타포…강강훈 작가

기사입력2025-06-26 08:30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지난 5월 16일부터 시작해 7월 13일까지 조현화랑 서울에서 열리는 강강훈 작가의 개인전은 사진으로 오해할 만큼 정교한 화면을 통해 유형과 무형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가의 예술적 사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2022년 이후 2년 반 만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강강훈 특유의 인물화와 목화 모티브가 어우러진 신작을 중심으로,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독창적 회화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2025년 제작된 200호 대작 4점과 목화 소품들이 공간을 밀도 있게 구성하며, 실재와 재현, 존재와 부재에 대한 질문을 관람객에게 몰입감 있게 전달한다.

강강훈은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인 초상화의 틀을 빌려, 자신의 자녀를 그리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단순히 개별적 존재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인물의 정적인 조형 안에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정서적 움직임과 생명의 에너지를 담아내려 한다. 작업의 시작은 딸아이의 표정을 사진으로 수백 장 촬영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이 과정은 계산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딸과의 감정적 교감과 자연스러운 소통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가 딸을 작품에 등장시키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로, 작품에는 딸의 성장과 변화하는 순간들이 고스란히 기록된다. 세밀한 붓질로 완성되는 이 작업은 전통적인 가족 초상화의 범주를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과 정서적 연결, 그리고 기억의 층위를 포함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비는 그친다 After Rain’, 2025, Oil on Canvas, 259×194cm. <이미지 제공=조현화랑>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는 목화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존재를 상징한다. 강강훈이 목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22년, 어머니의 부재 이후이다. 목화의 부드러운 솜털과 솜을 받치는 잎사귀는 작가에게 어머니의 흰머리와 손을 떠올리게 했다. 목화의 솜은 생기가 깃들지 않은 꽃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생명의 온기를 품는 이중적 특성을 지닌다. 이는 세대 간의 흐름과 변화하는 존재를 은유하는 동시에, 존재와 부재, 유형과 무형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형성한다. 목화와 인물의 대비는 바니타스 회화 전통의 유한성과 영속성에 대한 주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강훈의 목화 묘사는 과감히 생략된 디테일과 두꺼운 물감의 마티에르, 절제된 색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시각적 언어를 형성한다. 이는 마치 땅에 발을 딛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는 듯한, 물질적 형상과 초월적 세계를 동시에 지향하는 추상성의 경계를 넘나든다. ‘비는 그친다(After Rain)’, ‘해는 진다(After Sunset)’, ‘모든건 스쳐 지나간다(All things pass)’등의 작품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자연 속 변화하는 존재와 생명의 지속성, 영성을 주제로 삼는다. 아이의 얼굴과 함께 배치된 목화, 그리고 작품 속을 비추는 빛과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은 세대를 이어 지속되는 존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끊임없이 상실되나 새롭게 이어지는 존재에 대한 기억을 호출하는 시각적 메타포로서 고유한 의미를 획득한다.

강강훈의 인물화 연작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내면의 세계로 진입하게 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진정한 자아와 대면하도록 유도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딸은 작가 자신을 투영한 존재이기도 하다. 한 인생의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작업은 자유로운 물감의 형태와 유동적인 표현으로 이어진다. 최근의 목화 시리즈는 인물과 사물이 어우러져 과거와 미래라는 폭넓은 주제를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선보인다.

강강훈은 제주도립미술관, 우양미술관, 클레이 아크 김해미술관, 경기도박물관, 제주 현대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서 그룹전을 가졌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등 국제 아트 페어에서도 작품이 매진될 만큼 주목받고 있으며,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조현화랑 서울 개인전은 강강훈이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회화적 본질, 즉 존재와 부재, 유형과 무형,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자리다. 관람객은 작가의 화면 앞에서 가족과 세대, 삶과 죽음,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에 담긴 빛과 바람, 그리고 목화와 인물의 조우는 일상과 예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모두가 지닌 내면의 또 다른 자아와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예술만세 김현성 대표)